배우 이자람.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배우 이자람.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소리꾼이자 판소리 창작자, 배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해 온 이자람. 홀로 무대에 선 것이 처음도 아닌데, 그런 그에게도 1인극 바카라온라인(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11월 2일까지)는 유난히 어려웠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자람은 “소리 없이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며 “소리의 경우 내가 가진 소리라는 훌륭한 기술을 잘 연습하면 되는데, 바카라온라인의 주인공을 연기할 때는 뭘 열심히 해야 되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열심히 연습을 나갔다”며 웃었다.

바카라온라인는 인터미션 없이 120분의 러닝 타임 동안 배우 홀로 감정을 토해내고 무대를 구성하는 ‘연기 차력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도 무겁다. 법이 정의라 믿으며 승승장구하던 야망 넘치는 여성 변호사 테사가 하루 아침에 성폭력 피해자가 된 뒤 겪는 782일간의 법정 다툼을 다룬다. 이자람은 작품을 두고 “테사가 패배한 뒤 극 마지막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 1분 남짓한 희망의 순간을 향해 간다”고 설명했다.

2019년 호주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과 미국에 진출했고, 당시 여주인공을 연기한 조디 코머는 이 작품으로 토니 어워즈와 올리비에 어워즈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번 한국 프로덕션에는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 세 배우가 출연한다. 이자람은 “조디 코머가 했던 영상을 봤고,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다”며 “이후 대본을 보는데 그것 이상의 무엇이더라”고 밝혔다.

“기댈 데가 없을 때는 저 배우는 어떻게 헤쳐나가지, 연습 때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신록이가 농담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니 그거 500원’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테사가 성폭력 경험을 생생히 말로 옮겨야 하는 연극 특성상 배우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지치는 작품이었다. 이자람 역시 성폭력 피해 진술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막 연습에 돌입하기 열흘 전부터 도망다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연습에 들어갔다. 첫 공연을 올린 뒤 사흘 동안은 성폭행 직전의 상황에 놓이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지연이는 정말 동물적으로 텍스트를 만나고 텍스트를 쭉 가져가는 힘이 되게 좋거든요. 지연이의 무대는 흥미로워요. 신록의 경우는 미치광이 과학자 같아요. 끊임없는 발견과 해석을 하는 힘에 놀랐거든요.”

바카라온라인가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이자람은 “테사의 경험을 촘촘하게 무대 위에서 보여주며 젠더 폭력에 대해 면밀하게 이야기한다”며 “실제로 꽃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테사가 꽃뱀으로 취급받잖아, 이런 논의를 테이블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카라온라인는 그동안 이자람이 해온 판소리 작업과도 닮아 있다. 그는 고전 판소리를 다시금 매만지며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 시켜왔다.

“저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이잖아요. 당연히 제 피부에 가깝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에 대해 언급을 안 할 수 없는 사람이죠. 나아가 고전에는 인류 자체에 대한 연민과 애수가 있어요. 저는 여성으로서의 제가 느끼는 고전과 그 이면의 인간에 대한 연민의 연결점을 잘 찾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전통이 너무 좋고 전통이 ‘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잘’을 제가 이 시대의 여성으로서 어떻게 잘 해낼 것인가가 제 숙제인 거죠.”

김유진 기자
김유진

김유진 기자

바카라온라인부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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